그냥, 그 시기가 또 온줄만 알았다.

어느새 일한 지 16년이 되었다.
이렇게 글로 쓰고 나니 더 어마어마한 숫자군. 그새 나이도 많이 먹었다. 그래도 오래 열심히 살았네, 라고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또 이 시기가 왔구나, 싶었다.

돌이켜보면 유사한 패턴으로 성장해왔는데..
새로운 직장이나 역할이 주어지면, 현황을 파악하고 적응하고 분석해서 계획해 적용해보는데 1년. 그걸 잘 굴려서 좋은 결과를 내는 데 1년. 프로세스를 루틴화 하고 효율화하는 데 1년. 그러고 나면 에너지가 빠지고, 루틴이 완성 됐으니 흥미도 함께 빠지고. 그러면 슬금슬금 드는 생각 —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뭐지? 어디로 가야 하지? 쉽게 말하면 방향을 설정 해놓고 2~3년을 막 달리다가, 딱 어느 시점이 되면 다시 방향 설정을 다시 해야하는 그런 인간인데, 그게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하던 대로 하는 게 언제나 더 쉬우니까. 그래서 미루고 미루다 보면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순간이 온다. 생각이 많아지고, 글을 쓰게 된다. 지금처럼.

가장 크게 고민했던 건 8년차 쯤,
다니던 대기업에서 더 이상 성장이 어렵다는 걸 깨달았을 때. 직군의 특성, 회사의 구조, 내부에서 여러 시도를 해본 후 내린 결론이었다. 그 고민의 결과로 좋아하는 분야의 스타트업으로 이직했고, 우여곡절은 많았지만 아주 행복했고 많이 성장한 시기였다. 그런데 그런 곳에서도 3~4년 쯤 지나니 비슷한 상태가 됐다. 다음은 뭘까 고민하다가, 생활 밀착 서비스 + 리더 경험을 방향으로 잡고 지금 회사로 왔던 것이었다.

자, 그 이후 또 4년이 지났다.
3년쯤 됐을 때 이미 나는 위에서 이야기한 상태였으나 연차도 높고 대기업의 품은 따뜻했고 리더로서의 책임감도 컸고 동료들과의 유대감도 매우 컸기에 고민만 하다 시간은 흘렀다. 고민 자체는 사실 계속해왔다. 현실적으로 내가 도전할 수 있는 옵션들을 검토 하기도 했다. 현상 유지, 대기업 팀장. 스타트업 CMO, 스타트업 팀장/팀원 등..  어쨌든 그때까지는, 직장의 이동에 한정해서만 생각해왔고 리더의 어려움 또한, 사업을 하든 자영업을 하든 사람을 이끄는 일이니까 어딜 가든 있고 언제든 어려운 것이니 도망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안 하고 싶어 하는 건 도망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자꾸 물었다.
내가 정말 저걸 원하는가? 왜? 정말 좋아하고 하고 싶은 건, 하나의 목표 아래 다양한 장점을 가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문제를 해결하고 빠르게 실행하고 수정하고 토론하고 성과를 이뤄내는 그 과정 자체인데, 솔직히 대기업 팀장도 스타트업 CMO도 그걸 이뤄내기엔 오히려 어려운 길이고 그것보다는 나의 이름값을 올리는 일인 것 같았다. 물론 커리어 쌓는 것도 당연히 중요한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나에게 가장 큰 가치는 아닌 것 같더라. 어렸을 때 결혼해야 하고 아이 낳아야 하고 취직해야 한다 등 사회적 강요의 연장선 정도의 가치랄까. 부모님께 지인에게 나 어디로 이직했어 라고 말하기에 좋은 그런 가치. 허나 승부욕도 야욕도 크게 없는 나에게는 오히려 그 선택을 하는 게 남들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선택인 것처럼 느껴졌다. (나를 위한 선택이라기보다)

왜 나는 그 목소리를 오랫동안 묵살 했을까
남에게만 다정하지 말고 나에게 먼저 다정한 사람이 되자고 다짐 했으면서, 전혀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남들 다 하는데 네가 뭐가 그렇게 유별나냐고, 배가 불러서 아주 그냥, 하고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내가 그런 사람 이더라. 항상 생각하고 고민하고, 방향이 중요하고, 왜가 중요하고, 가치가 중요한 사람. 그걸 남들과 비교해서 절하하고, 스스로의 목소리를 묵살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면 안됐는데,

그러다 여러 가지 일들이 겹치면서 생각의 프레임이 조금씩 깨지기 시작했다.

→ 2편에서 계속

  1. 그냥, 그 시기가 또 온줄만 알았다.
  2. 결정, 그리고 프레임이 깨지던 순간들
  3. 결정할 수 있었던 이유
  4. 그래서 뭘 어떻게 한다는 건지
  5. 결정 그 후, FOMO에 대하여
  6.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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